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꿉꿉함을 느끼며 잠이 들었다. 그러나 에어컨은 밤새 매우 잘 돌아갔고, 감기에 걸려버렸다. 한국에 있을 때, 아르바이트 하다가 허리를 삐끗했달까, 아무튼 허리 통증이 있던 상태였는데 그 상태로 여행을 오니 누웠다 일어날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몸이 아프니까 여행도 맘껏 즐기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서 서럽다.
그렇지만 아픔을 무릅쓰고 나가야지. 어떻게 여길 왔는데.
하노이 랑데뷰 호스텔
혼자 여행하다보니 숙소는 미리미리 예약을 해두는 편이다. 숙소 선정은 7-8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곳 기준으로, 저렴하고 와이파이가 되는 곳! 그 중에서 조식도 제공해주는 곳이면 금상첨화다. 하노이 랑데뷰 호스텔 같은 경우에는 1끼에 1달러정도를 받았었다. 그치만 조식 메뉴가 다양하다. 맘에 든다. 내가 밥 먹으러 내려왔을 때, 마침 같은 방에 있던 일본인 친구가 먼저 줄을 서있어서 그 친구가 시킨 음식을 나도 시켰다.
가장 무난한 에그베이컨. 하노이에서 오래 머문게 아니라 모든 조식을 맛 보지 못했지만, 제일 무난한 음식인 것 같다. 아침으로 딱 적당하다. 숟가락과 포크, 칼은 식당 들어가자마자 왼쪽편에 있다. 거기엔 차와 커피도 준비되어 있으니 같이 먹으면 굳굳.
참고로 매주 주말(?)이었던가, 해피아워가 있어서 저녁 7시 이후로 맥주를 공짜로 준다. 내가 있을 때 해피아워인 적이 있었는데, 살짝 들여다보니 몇몇이 그것도 베트남사람들끼리만 있길래 감히 끼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난 맥주파인데.. 친구가 있었으면 도전해봤을텐데 아쉽다.
아침을 먹고 올라와선 느긋하게 돈을 정리해본다. 넉넉치 못한 여행이라서 가계부를 꼼꼼히 작성하는 편이다. 한국에서도 이러면 좋을텐데, 나란 인간이란. 모든 지폐를 호치민 주석으로 할 정도로, 베트남 사람들은 호치민을 사랑하는 것 같다.
어제 신투어 예약하러 갔을 때 샀던 코끼리 바지(7만동). 처음에 9만동인가 불러서 조심스럽게 7만동 했는데, 너무도 쉽게 '오케이-'해서 놀랐다. 왠지 더 깎아도 되는 것 같다. 그치만 내 결정장애를 도와준 직원이 고마워서 흔쾌히 결제한 이 바지. 파랑파랑한 게 너무 좋다. 역시 더울 땐 파란 계통이 짱. 소재가 뭔지 모르겠는데, 진짜 너무 시원하다. 한국에 와서도 폭염특보 내려도 이 바지 입고 자도 될 정도.
너무 편해서 매일 빨아 입어서 앞으로 자주 사진에 등장할 바지.
랑데뷰호스텔 내가 머문 숙소에는 테라스가 있다. 아마 다른 방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내가 머문 방이 제일 꼭대기여서 뷰가 더 좋았던 것 같다. 문이 잘 안열리는데 아직 자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고생고생해서 열었다. 열자마자 펼쳐지는 하노이 풍경.
하노이의 건물들. 아침의 그 오토바이, 차 빵빵대는 소리, 아침부터 후끈후끈한 날씨. 그립다. 물론 이건 에어컨이 있다는 전제 하에.
성 요셉 성당
아침 먹고 침대에서 뒹굴뒹굴 거리다가 성요셉성당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느긋하게 다니기. 물론 일정을 안 짜온 건 아니지만, 도시 간 이동하는 일정이 빡빡하기 때문에 최대한 그 도시 안에서는 여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목표였다.
어느 책에는 노트르담을 닮았다고 적어놨는데, 내가 볼 땐 전혀 안 닮았다. 대충 어떤 점 때문에 닮았다는 건지는 알겠으나, 일단 규모에서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고. 정면에 있는 세 개의 문이나 개별 무늬, 스테인드 글라스 전부 다 다르다. 다른 성당을 못 봐서 잘 모르겠지만, 베트남화했다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내가 갔을 때가 10시 즈음이었다. 들어갈 땐 몰랐는데, 11시엔 나와야했다. 그렇지만 적당히 구경 잘하고 나와서 시간 잘 맞춰 간 것 같다. 출입구로 들어서면 씨클로 아저씨들 몇몇이 있고, 내가 갔을 땐 관광객들도 많지 않아서 조용하고 좋았다.
예수상이 신기해서 찍었다. 정말 베트남스러운 예수. 미륵보살의 모습이 한, 중, 일마다 다 다르듯 역시 예술은 지역색이 확 뭍어나는 것 같다.
이렇게 돌로 된 의자들이 놓여있다. 확실히 덥다보니까 저런 돌 의자가 시원하고 좋은 것 같다.
오른편에 성당을 두고 길을 따라 쭉 가면, 이런 동방박사(?) 벽화를 볼 수 있다. 이건 보정을 한 사진이라서, 실제로 보면 채색이 옅다.
그리고 드러나는 길. 예쁘다. 사람도 없고. 문 앞은 막혀있어서 딱 포토존. 길이 아니라 풀밭이었으면 그냥 앉아서 바라보았을 광경이다.
나올 때 삼카봉(셀카봉+삼각대)를 챙겼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람들 없을 때, 재빠르게 설치해 찍어서 건진 사진. 카메라와 피사체 간의 거리를 맞추느라 몇 번을 찍었던지. 그럼에도 인생샷 못 건지는 건 여전하다.
삼각대가 다이소 미니 삼각대라서 길이가 짧다. 그래서 차마 위에서 내려보는 듯한, 얼짱 각도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치만 다리가 길어보이고 얼굴이 작아보이니 만족. 코끼리 바지가 시선을 집중시키는구나. 이쪽 편의 문은 막혀있어서 혼자 놀기 좋다. :)
다시 출입구 쪽으로 돌아가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프랑스 사르트르 성당처럼 내부가 정말 하얗다. 확실히 프랑스 영향을 받아서 그런가. 그치만 천장이라든가, 벽면에 덧댄 나무 등이 여기는 베트남인 걸 말해준다.
가장 화려했던 스테인드 글라스. 확실히 규모가 작고, 둥근 모양이 아니라, 아기자기하게 덧붙여 만들어간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실제로 보면, 예뻐서 자꾸 사진을 찍게 된다.
자리에 앉아서, 이번 여행에 대해 기도한다. 그리고 여행 컨셉에 맞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차마 성당 전체를 그릴 순 없어서, 앞에 보이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단상을 그려보고자 한다.
열심히 자책하며 그리고 있을 무렵, 내 앞에 앉으신 한 아주머니. 갖고 계시던 부채를 보아 한국인이 분명한데, 기도하시던 모습이 너무 좋아서 몰래 찍어버렸다. 성 요셉 성당과 너무 잘 맞는 느낌이어서 닮고 싶었던 분.
그리는 중간중간 학생들도 왔다갔다 해서, 그림을 가리고 싶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그림. 사실 미완성인데, 색칠 도중에 관리인 아저씨가 나가야하는 시간이라고 해서 미완으로 완성한 그림이다. 그림이란 정말 힘들구나.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이 솟구친다.
콩카페
성요셉성당 맞은편에는 베트남의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인 콩카페가 있다. 물론 내가 머무는 랑데뷰 호스텔 근처에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콩카페가 있긴 하지만, 성당에서 나오는 순간 찔듯한 더위에 콩카페로 향했다. 인기가 있어서인지, 본점과 분점이 길 하나를 두고 나란히 있다.
내가 간 곳은 분점인데, 혼자여서 창가자리에 앉으려는 나를 직원이 여기로 안내해줬다. 비록 화장실 앞이긴 하지만, 안락하게 꾸며져서 취향저격이었던 자리. 셋은 앉을 자리에 앉혀준 직원에게 고맙다.
사실 분점이랄 것도 없이, 그냥 공간이 떨어져 있을 뿐. 주문을 받아서 본점에 가 메뉴를 만들어 갖다주는 식이다. 물론, 코코넛 커피를 시켰고 맛은 좋았다. 베트남 커피 진짜 맛있다.
그리고 여기서 만난 반가운 한국인. 아기를 데리고 여행 온 부부였는데,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 콩카페 직원도 귀여워했다. 흐뭇.
느긋하게 다음 여행 계획을 짜보도록 한다. 원래 오늘 투어를 하려고 했지만, 너무 빡빡한 일정이기도 하고 슬렁슬렁 여행하자고 마음을 먹어서 어딜갈지 고민된다.
참고로 콩카페 와이파이는 저 탁자 위에 놓인 통에 적혀있다. 직원 코스튬이나 인테리어는 베트남전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아무튼 직원이 너무 친절해서 같은 요식업 알바생으로서 존경스러웠다.